[CEO] 블룸버그로 월가 ‘정복’ 블룸버그 뉴욕시장
고승재··조회 49
[CEO] 블룸버그로 월가 ‘정복’ 블룸버그 뉴욕시장
“컴퓨터·증권 모두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설명 : 지난 6월 뉴욕 근교를 시찰하느라 뉴욕 경찰의 벨412 헬리콥터를 직접
조종해 뉴욕항 상공을 날고 있는 블룸버그 시장.그는 헬기는 물론 각종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AP자료사진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60)는 교황청에도 보급돼 있다는 금융정보
서비스망 ‘블룸버그 터미널’로 유명한 블룸버그사(社)의 설립자다. 이 회사 주식
72%(44억달러 상당)를 가진 그는 미(美)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가 매긴 2002년
세계 갑부 리스트에서 72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 지난해 뉴욕시장으로 취임하면서
9·11 테러 이후 뉴욕 재건의 기수로 나선 것이다. 미 경제주간지 포춘(Fortune)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행정가(行政家) 중 두 번째 갑부”로
등극했다. 그의 앞자리에 있는 최고 갑부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이다.
뉴욕시장은 블룸버그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라고 평한 4가지 중 하나다.
나머지 3개는 미국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다. 블룸버그를 성공시킨
데 이어 이제는 뉴욕시를 상대로 경영에 나선 것이다.
그는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의 상원의원 출마를 축하하는 호화 파티를 열었던
열혈 민주당원이었지만, 야망을 이루기 위해 뉴욕시장 선거에서는 후보 4명이 난립한
민주당 대신 공화당을 택했다. 시장이 되면 단 한푼의 월급도 받지 않겠다고 공약한
그가 선거전에 쏟아 부은 돈은 7200만달러(약 86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언론들은
추측한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가장 미국적인 백만장자 신화의 주인공인 블룸버그는 미동부
보스턴 교외의 메드포드에서 잡화점 직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가며 명문 존스홉킨스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다.
66년 월스트리트 굴지의 증권사 살로먼 브러더스에 취직한 그는 입사 6년 만에
수백억달러를 움직일 수 있는 파트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81년 살로먼
브러더스가 다른 회사와 합병하면서 그는 해고됐다. 퇴직금조로 받은 1000만달러로
채권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계산해 제공하는 터미널(정보단말기)을 만들었고, 결국
월가를 정복했다.
자서전 ‘블룸버그가 쓴 블룸버그(Bloomberg by Bloomberg)’를 보면 그의
성공비결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증권사 생활을 통해 시장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는 것과 존스홉킨스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컴퓨터에
능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컴퓨터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나, 증권 업무가 나보다 탁월한
브로커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둘 모두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술회했다.
덕분에 그는 초보자도 쉽게 쓸 수 있고 게임 만큼이나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생 블룸버그 통신이 짧은 시간에 월스트리트에서 경쟁자 로이터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는 블룸버그의 주도 면밀한 세일즈 전략도 작용했다. 사업 초기
블룸버그는 로이터를 공략하기 위해 주요 신문사에 자사의 터미널을 공짜로
보급했다. 조건은 단 하나 ‘자료제공 블룸버그’라는 크레디트(정보출처)만
달아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2000년 블룸버그는 이런 무료 터미널을 전격적으로 모두 유료화했다. 이미
블룸버그 터미널로부터 모든 기초자료를 얻어온 언론사들은 블룸버그가 없으면
‘금단(禁斷)’ 증상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들은 모두 두말 없이 블룸버그의
유료고객이 되었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답게 성실함도 그의 큰 자산이었다. 블룸버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털어 놓았다.
“입사 직후 아침 7시면 트레이딩룸에 나왔는데, 그 시간에 출근한 사람은 나 말고는
빌리 살로먼(당시 이사)이 유일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오후 6시면 다들 퇴근했지만 나의 퇴근시간은 늘 7시였다. 매일 나와 함께 남은
사람은 존 거트프론드(회사 후계자)였다. 그는 나를 집까지 태워주곤 했다.”
덕분에 블룸버그는 말단 신입사원 시절부터 회사 고위층과 교감할 수 있었고, 그
덕인지 6년 만에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CEO로서의 그는 가혹할 정도로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점심시간도 없이 책상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때웠다. 10시간을 연속으로 일하는 블룸버그사의 전통도
만들었다. 블룸버그는 한번 회사를 나간 직원을 ‘배신자’로 규정해 복직할 수
없도록 하는 냉혹함으로도 유명하다. 떠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우리(us)를
떠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사생활은 드라마 속 백만장자의 전형이다.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화려한 파티를
벌이고, 자가용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직접 몰다 두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콜로라도의 배일, 뉴욕 맨해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각각 집을 두고 경마를
즐기는 두 딸을 위해 말도 사육한다. 하지만 사장에 취임한 뒤 익명으로 기부를
했다가 뒤늦게 알려진 것이나, 모교인 존스홉킨스에 수천만달러를 기부한 것도
블룸버그였다.
일에 대한 놀랄 만한 열정은 그의 다른 일화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블룸버그
경영시절 그는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일요일 밤이야말로 한 주일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어서 일을 시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된다.”
( 韓在賢기자 rookie@chosun.com )
◆블룸버그社는…
블룸버그사는 뉴욕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 10개국에 인터넷, 잡지·출판, 비즈니스
라디오 네트워크, 금융케이블 네트워크를 거느린 세계 최고의 금융
정보·방송·출판회사다. 84개 지국 1200여명의 기자들이 ‘블룸버그
프로페셔널’이라고 이름 붙인 자사 단말기 서비스에 기사를 송고하고, 이는
전세계에 보급된 16만7000대의 블룸버그 단말기를 통해 24시간 공급된다. 직원은 약
7000명이며, 2001년 매출은 26억달러였다. 이 회사의 시장가치는 최소 70억달러에서
최고 150억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댓글 1
- 고고승재2002. 8. 24.
블룸버그가 이렇게 잘난 사람인지 몰랐다. 그냥 증권맨인줄 알았는데..장사꾼이었군..멋지다